장안세(張安世)
[요약정보]
UCI | G002+AKS-KHF_13C7A5C548C138U9999X0 |
호(號) | 송은(松隱) |
시호(諡號) | 충정(忠貞) |
생년 | ?(미상) |
졸년 | ?(미상) |
시대 | 고려후기 |
본관 | 인동(仁同) |
활동분야 | 충효열 > 충신 |
부 | 장균(張均) |
저서 | 『송은실기』 |
[상세내용]
장안세(張安世)
생졸년 미상. 고려 말기의 충신. 본관은 인동(仁同). 호는 송은(松隱). 장균(張均)의 아들이다.
고려말 정헌대부(正憲大夫) 덕녕부윤(德寧府尹)의 관직에 있을 때 함주(咸州: 지금의 함흥)에 있는 갈한천(乫罕川)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많았으나 해당 수령들이 그 대책을 세워 해결하지 못하자 특별히 함주부사로 임명되었다.
10여년 동안 함주에 재임하여 있으면서 치수공사를 완수하였으며, 또 목판으로 길이 70간이나 되는 만세교(萬世橋)라는 다리를 놓았다.
그뒤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갔다. 태조가 친필의 편지로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, 아들 중양(仲陽)과 함께 인동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
김집(金集)이 기록한 「두문동칠십이현록(杜門洞七十二賢錄)」에 16번째로 기록되어 있다.
이상정(李象靖)이 지은 유허비문(遺墟碑文)을 보면, 그의 거관치적(居官治績)과 애국충절이 잘 기술되어 있다. 인동 옥계사(玉溪祠)에 배향되었다.
저서로 『송은실기』가 있다. 시호는 충정(忠貞)이다.
고려말 정헌대부(正憲大夫) 덕녕부윤(德寧府尹)의 관직에 있을 때 함주(咸州: 지금의 함흥)에 있는 갈한천(乫罕川)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많았으나 해당 수령들이 그 대책을 세워 해결하지 못하자 특별히 함주부사로 임명되었다.
10여년 동안 함주에 재임하여 있으면서 치수공사를 완수하였으며, 또 목판으로 길이 70간이나 되는 만세교(萬世橋)라는 다리를 놓았다.
그뒤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갔다. 태조가 친필의 편지로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, 아들 중양(仲陽)과 함께 인동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
김집(金集)이 기록한 「두문동칠십이현록(杜門洞七十二賢錄)」에 16번째로 기록되어 있다.
이상정(李象靖)이 지은 유허비문(遺墟碑文)을 보면, 그의 거관치적(居官治績)과 애국충절이 잘 기술되어 있다. 인동 옥계사(玉溪祠)에 배향되었다.
저서로 『송은실기』가 있다. 시호는 충정(忠貞)이다.
[참고문헌]
松隱實記
[집필자]
한여우(韓如愚)
수정일 | 수정내역 |
---|---|
2005-11-30 |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.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