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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안세(張安世)

[요약정보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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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(號)송은(松隱)
시호(諡號)충정(忠貞)
생년?(미상)
졸년?(미상)
시대고려후기
본관인동(仁同)
활동분야충효열 > 충신
장균(張均)
저서『송은실기』

[상세내용]

장안세(張安世)
생졸년 미상. 고려 말기의 충신. 본관은 인동(仁同). 호는 송은(松隱). 장균(張均)의 아들이다.

고려말 정헌대부(正憲大夫) 덕녕부윤(德寧府尹)의 관직에 있을 때 함주(咸州: 지금의 함흥)에 있는 갈한천(乫罕川)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많았으나 해당 수령들이 그 대책을 세워 해결하지 못하자 특별히 함주부사로 임명되었다.

10여년 동안 함주에 재임하여 있으면서 치수공사를 완수하였으며, 또 목판으로 길이 70간이나 되는 만세교(萬世橋)라는 다리를 놓았다.

그뒤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갔다. 태조가 친필의 편지로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, 아들 중양(仲陽)과 함께 인동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

김집(金集)이 기록한 「두문동칠십이현록(杜門洞七十二賢錄)」에 16번째로 기록되어 있다.

이상정(李象靖)이 지은 유허비문(遺墟碑文)을 보면, 그의 거관치적(居官治績)과 애국충절이 잘 기술되어 있다. 인동 옥계사(玉溪祠)에 배향되었다.

저서로 『송은실기』가 있다. 시호는 충정(忠貞)이다.

[참고문헌]

松隱實記

[집필자]

한여우(韓如愚)
수정일수정내역
2005-11-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.